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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라는 마지막 수확

정소혜 청년 마을활동가(무안군 몽탄면)

정소혜 청년 마을활동가(무안군 몽탄면)

어제(10월23일)는 가을의 마지막 절기, ‘상강(霜降)’이었다. 이슬이 얼어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들녘에는 나락을 베는 콤바인이 바쁘게 움직이고, 농부들의 손끝에서는 한 해 농사의 마지막 결실이 맺어지고 있다. 서리가 내리기 전, 잘 익은 벼를 거두는 시기, 상강은 풍요의 기쁨과 함께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농부들의 지혜가 깃든 절기다.

지나가던 길에 콤바인 작업 현장을 마주했다. 하얀 연기가 자욱해 고장이 난 줄 알았지만, 그건 불이 아니라 깨씨무늬병으로 말라버린 벼 이삭들이 일으킨 먼지였다.

올해 들녘은 예년의 황금빛 대신 빛이 바랜 논이 더 많았다. 벼 잎과 줄기에는 갈색 반점이 번졌고, 이삭은 속이 비어 있다. 긴 장마와 강풍, 부족한 일조량이 벼를 여물지 못하게 했고, 병해와 기상이변이 겹치며 수확량은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

수확기를 맞았지만 농민들의 얼굴에는 웃음보다 근심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농부들은 논을 떠나지 않았다. 무너진 논두렁을 다시 세우고, 병든 이삭 속에서도 내년의 씨앗을 챙겼다. 누군가의 눈엔 작고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버티는 법으로 마음을 길러온 사람들이다.

그 마음의 끝에는 언제나 작은 위로와 희망이 피어난다. 벼가 여물지 못한 해에도, 거둘 것이 많지 않아도 묵묵히 밭으로 나가 땅을 어루만진다.

연기가 아닌 먼지

하지만 이들의 버팀이 언제까지 인내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변화하는 기후에 대응할 수 있는 농업 인프라 개선, 병해 예방을 위한 공공 연구와 지원, 그리고 농업이 존중받는 사회적 환경이 감사의 마음 위에 더해져야 할 현실의 과제다.

농민들이 다시 꿈꾸고 도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제도와 연대의 힘이다. 그 힘은 풍요의 결과가 아니라, 버텨낸 사람들의 존엄이 맺은 결실에서 비롯된다. 존엄이 계속 이어지려면 함께 책임지고, 함께 미래를 일구는 나라가 필요하다.

농업은 여전히 한 나라의 뿌리이고, 그 뿌리가 튼튼해야 내일의 식탁에도 희망이 자란다.

서리가 내리는 상강, 찬 기운이 스며들수록 감사의 온기는 더욱 깊어진다.

벼 수확 한창

농업인들의 굳은 손마디마다, 그들의 삶을 지탱해온 건 기술도, 운도 아닌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모여 다음 봄을 꿈꾸게 하는 또 하나의 생명력이 된다.

이 가을, 들녘의 곡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둬들이지만, 감사의 수확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자.

감사의 수확은 버텨낸 시간에서 피어난 회복의 마음이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증거이자, 다시 꿈꾸게 하는 희망의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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